커플룩 대신 시밀러룩, 둘이 함께 입는 법

이도현 | 2026. 08. 22

커플룩 대신 시밀러룩, 둘이 함께 입는 법

주말 오후의 성수동은 거대한 런웨이 같다. 카페와 쇼룸 사이를 걷는 사람들의 옷차림에는 저마다의 규칙이 있다. 카메라를 들고 골목을 따라 걸었다.

오후 두 시, 성수역 3번 출구에서 출발했다. 공장 담벼락과 붉은 벽돌 건물 사이로 사람들이 천천히 흘러갔다. 이 동네의 걸음은 빠르지 않다. 쇼윈도 앞에서 멈추고, 골목 끝 카페 앞에 줄을 서고, 친구의 사진을 찍어 준다. 옷을 보기에 이만큼 좋은 속도도 없다.

가장 많이 보인 조합은 와이드 팬츠와 짧은 재킷이었다. 하의는 넉넉하게, 상의는 허리선 위로 짧게 끊어 비율을 만든다. 신발은 대부분 굽이 낮은 로퍼나 스니커즈였다.

바지 색은 회색과 먹색, 진한 남색이 대부분이었다. 재킷은 그보다 한 톤 밝거나, 아예 같은 색으로 맞춰 위아래를 한 덩어리처럼 보이게 했다. 색을 많이 쓰지 않는 대신 소재로 차이를 냈다. 울 바지에 나일론 재킷, 데님 위에 니트 카디건을 걸치는 식이다. 멀리서 보면 단순하고, 가까이서 보면 결이 겹쳐 있다.

골목마다 다른 얼굴

같은 성수동이어도 골목마다 옷차림이 달랐다. 연무장길처럼 쇼룸과 편집숍이 모인 큰길에서는 브랜드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많았고, 옷도 한 벌로 맞춘 듯 정돈돼 있었다. 시즌 신상품을 입고 나온 사람, 방금 산 모자를 바로 써 본 사람도 자주 눈에 띄었다.

한 블록만 안으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바뀐다. 아직 돌아가는 인쇄소와 구두 공방 사이 골목에서는 작업복 같은 옷이 많았다. 두꺼운 면 셔츠, 무릎이 나온 치노 팬츠, 앞치마처럼 둘러맨 가방. 실제로 이 동네에서 일하는 사람인지, 그렇게 보이고 싶은 사람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그 경계가 흐린 것이 이 동네 스타일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서울숲 쪽으로 넘어가면 다시 달라진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사람,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옷은 한결 가벼워진다. 후드 스웨트셔츠에 트레이닝 팬츠, 그 위에 걸친 얇은 바람막이. 꾸미지 않은 듯 보이지만 색은 대부분 두세 가지 안에서 정리돼 있었다.

액세서리는 하나만

눈에 띄는 사람들은 액세서리를 많이 하지 않았다. 대신 하나를 크게 했다. 커다란 은색 귀걸이 하나, 혹은 손목을 덮는 가죽 시계 하나가 옷차림 전체의 중심이 되었다.

가방도 같은 원리였다. 작은 가방 여러 개 대신 큰 토트백 하나를 어깨에 걸었다. 캔버스 천이 해져 모서리가 부드러워진 가방이 많았다. 새것보다 오래 들어 손때가 묻은 물건이 더 멋있어 보인다는 데 다들 동의하는 것 같았다.

저는 오늘 입은 옷보다, 오늘 이 옷을 고른 이유가 더 궁금해요.

박하은, 포토그래퍼

옷을 고른 이유를 물었다

사진을 찍고 나면 늘 같은 질문을 던졌다. 오늘 이 옷을 왜 골랐어요? 답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편해서, 날씨가 애매해서, 친구가 예쁘다고 해서. 빈티지 숍에서 일한다는 한 직원은 오늘 입은 셔츠를 세 번째로 수선해 입는 중이라고 했다. 단추를 바꾸고, 해진 소매 끝을 접어 박았다고.

유행을 따라 입었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신 자기가 정한 규칙을 하나씩 갖고 있었다. 검정은 위아래 한 번만 쓴다, 모자를 쓰면 귀걸이는 뺀다, 신발은 바지 색과 맞춘다. 그 작은 규칙들이 모여 골목의 풍경이 된다.

함께 나온 두 사람이 서로 옷을 맞춘 경우도 많았다. 다만 똑같이 입지는 않았다. 한 사람이 체크 셔츠를 입으면 다른 사람은 같은 색의 단색 니트를 입고, 한 사람이 검정 부츠를 신으면 다른 사람은 검정 가방을 드는 식이다. 둘을 나란히 세워야 비로소 짝이 보이는 옷차림이었다. 커플룩이라는 말보다 서로의 옷장을 조금씩 빌려 입은 것에 가까웠다. 물어보니 실제로 바꿔 입은 옷도 하나씩은 있다고 했다.

계절이 바뀌는 신호

9월 말의 골목에는 여름과 가을이 같이 걸어 다녔다. 반소매 티셔츠 위에 카디건을 어깨에만 두른 사람, 샌들에 두꺼운 양말을 신은 사람이 많았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고 한낮은 아직 더운 날씨 때문이다. 이 시기의 옷차림은 언제든 벗고 입을 수 있는 한 겹이 중요하다.

색에서도 계절이 보였다. 한 달 전만 해도 흰색과 하늘색이 많았는데, 이날은 갈색과 올리브, 버건디가 조금씩 섞여 있었다. 다만 한 번에 바꾸지는 않았다. 바지는 여름 그대로 두고 신발이나 가방만 가을 색으로 바꾸는 식이다. 옷장을 통째로 갈아엎지 않고 하나씩 계절을 들여오는 방법이다.

카메라 뒤에서

거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을 찍는 데에는 나름의 순서가 있다. 먼저 멀리서 옷을 보고, 다가가 짧게 인사하고,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묻는다. 허락을 받으면 포즈를 부탁하지 않는다. 걷던 대로 걸어 달라고, 서 있던 대로 서 있어 달라고 말한다. 꾸민 자세보다 원래 걸음걸이에 그 사람의 옷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이날은 디지털 카메라와 함께 필름 카메라를 한 대 더 들고 나갔다. 필름은 한 롤에 서른여섯 장뿐이라 셔터를 아끼게 된다. 그래서 필름으로는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만 찍었다. 현상해 보니 서른여섯 장 중 절반이 넘게 오후 네 시 이후의 사진이었다. 해가 낮아질수록 옷의 결이 더 잘 보였다는 뜻이다.

해 질 무렵의 마지막 컷

해가 질 무렵, 마지막으로 찍은 사람은 아버지의 오래된 코트를 입은 대학생이었다. 소매는 길고 어깨는 컸지만 그 옷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은 분명 그였다.

그는 코트를 옷장에서 처음 꺼냈을 때 냄새부터 맡았다고 했다. 오래된 울과 담배, 그리고 아버지가 쓰던 스킨 냄새. 그래서 수선집에 맡기지 않고 그대로 입는다고 했다. 사진을 확인하던 그는 소매를 한 번 걷어 올리더니, 이렇게 입는 게 더 자기 같다며 웃었다.

이날 찍은 사진은 모두 이백여 장이다. 다시 넘겨 보니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성수동의 스타일은 하나의 트렌드라기보다, 각자의 이유가 모인 지도에 가깝다. 다음 주말에도 이 골목을 걸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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